심우장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이 지낸 집으로 말년을 보낸 곳이기도 합니다. 1984년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7호 '만해 한용운 심우장'으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에는 대한민국 사적 제550호로 승격되었습니다.
▲▲심우장을 포함해 성북지역 가볼만한 곳이 잘 안내된 지도 입니다.▲▲
심우장 가는 길
길상사를 나와 심우장으로 향합니다. 길상사를 뒤로하고 내리막길을 따라 150M 정도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으로 작은 골목길이 나옵니다. 그 길을 따라 다시 올라가 보면 삼우장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시가 많이 있습니다. 반대로 삼우장에서 길상사로 가는 길도 표시되어 있습니다.
삼우장을 안내하는 표시를 따라가면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경험하게 됩니다. 공간감이 딱 사람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개발되지 않은 옛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좁은 골목길은 넓은 도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친근함을 줍니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고 나면 한적하고 평온해 보이는 도로가 나옵니다. 유명한 돈가스집도 보이고 주변에 공영주차장도 여럿 보입니다.
만해 한용운이 벤치에 앉아있는 동상 옆으로 계단을 오르면 심우장에 도착합니다.
북향으로 지어진 한옥
심우장은 만해가 총독부 건물과 마주하기 싫다며 북향인 집터를 찾아 이곳에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여기는 남쪽이 높은 언덕 지형으로 북향으로 집을 지을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삼우장이 북향집이라서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고 했는데, 한여름에 도착한 심우장은 오히려 시원한 것 같았습니다.
심우장 대문을 들어서면 어느 시골마을의 조용하고 한적한 옛집에 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주변으로 커다란 소나무와 향나무가 가득하고 아담한 마당이 있습니다. 정면으로는 심우장을 관리하는 관리소가 보이고, 좌측으로 심우장(尋牛莊)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린 한옥이 보입니다.
심우장은 ㄱ자 평면의 단출한 옛 한옥입니다. 우측에는 부뚜막이 있는 부엌이 있고, 중간에 대청, 좌측에 만해가 사용하던 방이 있습니다. 세 개의 공간은 툇마루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이며 부엌은 뒷마당을 통해 출입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중간의 사랑방에는 한용운의 시집, 관련기사, 원고 등의 전시되어 있습니다.
방안의 책상에 앉아 마당 쪽을 바라보면 마음이 평온하고 차분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여기 앉아서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하면 정말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진짜로 글을 써야 하거나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잠도 잘 올 것 같기도 합니다.
심우장과 만해 한용운
심우장(尋牛莊)은 만해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살았던 곳입니다. 만해 한용운은 3.1 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기도 하고 '님의 침묵'을 쓴 시인이기도 합니다. 1919년 승려 백용성(白龍城) 등과 함께 불교계를 대표하여 독립선언 발기인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고, '3·1 독립선언문'의 공약 삼장을 집필하기도 하였습니다.
1910년에는 불교의 변혁을 주장하는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였고, 1926년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님의 침묵'을 펴낸 후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에 가담하였으며, 1931년에는 조선불교청년동맹을 결성하였습니다.
만해는 3·1 운동 후 3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나와 성북동 골짜기 셋방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승려 벽산(碧山) 김적음이 자신의 초당을 지으려고 준비한 땅 52평을 내어주었고, 조선일보사 사장 방응모 등 몇몇 유지들이 추가로 땅을 더 사서 '심우장'을 지었습니다. '심우장(尋牛莊)'이란 명칭은 선종(禪宗)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등록번호 : 사적 제550호 / 시대 : 1933년
소재지 :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29길 24
관람시간 : 09시~18시